Contribution à un catalogue   

 

DRAWING – DRAFT

드로잉초안

 

현대의 드로잉은 선의 개념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 연필과 선이 배제되기도 다양한 방식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다수의 현대인은 종이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으로 드로잉을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년간 어디에서나 성행했던 수많은 드로잉 전시회를 관람해 경험에서 나온 결과이리라. 오랜 역사를 가진 드로잉 작업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살펴보면, 가지 중요한 특징이 강조되면서 정의가 다소 달라진다. 특징은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 지역 도예가의 딸인 부타데스의 전설에도 이미 나타난 있다. 부타데스는 전쟁터로 떠나게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초크로 벽면에 그림을 그렸다. 연인이 떠난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형상에다 점토를 메워 불에 구웠다. 이와 같이 예전부터 드로잉은 고상하고 손색없는 작품 제작을 위한, 일시적이지 않고 오래 지속될 있게 하는 정교한 과정에서, 결정적이긴 하나 과도기적 단계일 뿐인 매개체의 역할을 왔다. 여기에서 드로잉은 프로젝트의 과정인초안(draft)’ 가리킨다. 전설은 연인이었던 청년이 전사하면서 슬프게 끝을 맺는다. 비통해 하는 소녀가 죽은 자의 특징을 기억하기 위해 드로잉 디자인의 산물인 테라코타 상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드로잉은 기념물이 되었다. 따라서 어원적 의미로 , 드로잉은 이상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추억할 있는 유물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줌으로써, 이상 없는 것에 대한 대체물이 자동적으로 되어버린다. 드로잉이 사라질 경우 , 드로잉에 대한 기억이 원래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 어떤 의미로 정의되든지, 수세기 동안 매개체와 기념물이라는 가지 근본적인 기능을 간직한 , 드로잉은 종이를 단순하게 밑바탕으로 사용한다는 정의보다 다양하고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 Dominique De Beir, Claude Cattelain, Aristide Bianchi, Frédéric Messager, Patrice Pantin –에게 있어서 기념물의 기능은 드로잉 자체, 드로잉 창작 과정을 기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종이가 고통 받도록 공격을 가하며 다소 노골적인 폭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작업으로 점철된 작품 제작 과정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작가들은 종이와의 처절한 육박전을 통해 드로잉 과정이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도전적이며, ‘열정(passion)’이란 단어의 진정한 본래의 의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들이 거행한 파괴적 행동을 통해, 수동적인 지면으로서 작용하던 종이는 예술 작품으로 격상되고 아우라를 갖게 된다. 따라서 드로잉이 매개체가 되어, 단지 프로젝트의 과정인초안(draft)’이란 개념에서 완성된 작품으로 변모하는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데, 최종 완성물은 대게 그동안 드로잉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들의 작품과 접근 방식은 앞서 소개되었던 정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중간 매개체라는 특화된 역할은 종이가 단순한 소재에서 최종 결과물로 바뀌는 과정, 초안(draft)’드로잉으로 변모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독특한 태도, 과정, 절차를 가져옴으로써, 이러한 표현 양식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으며, 또한 현대 미술에 굳건히 정착하고 있다. 종이가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단독으로 쓰이진 않아도- 표현 재료로 사용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종이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매개체가 된다고 있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이자 출발점은드로잉초안(draft)’ 예술의 소재이기도 하며, 부드러움과 격렬함, 성찰과 열정, 온유함과 잔인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성질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종이가 부수적인 요소라는 개념에서부터 이를 초월한초안(draft)’이란 매개로, ‘드로잉 보조하며 구체화에 기여하고, 결국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궁극적인 오브제로 진화하면서 능동적인 존재로 되기까지, 과연 종이는 존재론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논란에 놓여 있음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과정은 종이의 수동적인 역할에서부터 창작자의 중개인이 되고, 나아가 대변인이 되는, 일종의 작가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작업이다. 길고도 지난한 작품 제작 과정에 초대받지 못한 외부인의 입장으로서, 결과물만을 감상할 있는 관람객의 시선 앞에 놓인 작품은 이제 창작자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어 예술가와 동일시되거나 오히려 초월한 존재가 되어, 의미를 가지고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보들레르가드로잉은 자연과 예술가 사이의 분투이다라고 역설했다면, 우리는드로잉은 어떠한 형체가 아니라 형체를 보는 수단이다.” 라는 드가의 또한 잊지 않아야겠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의 도전에서 드로잉의 이해 방식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있다. 작가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부여된 기념물과 매개체라는 드로잉의 기능이 오직 드로잉 자체만을 성찰하는 목적을 지닌다. 기능은 드로잉 자체, 드로잉의 소재 종이, 노력의 과정에만 철저히 적용된다. 이들에게 드로잉은 다른 어떠한 것도 고려할 필요 없이, 자체로서 독립적이며, 주제가 되는 동시에 변화의 대상이며 과정이고, 또한 자체로서 완성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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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que de Beir 종이라는 재료의 저항력과 파손성을 활용하여, 종이를 뚫고, 치고, 할퀴고, 벗겨내고, 뒤집는다. 작가는 종이를 꼼꼼히 준비시킨 , 장렬히 전사시킨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의 작업은 종이를 깨워서 존재를 밝히고자 하는데, 종이의 두께를 가시화하여, 보통은 보지 않는 종이의 뒷면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려 한다. 자연 상태의, 또는 왁스를 입힌 나뭇잎에서부터 카본지, 종이 상자 등의 폐품을 이용한 다양한 소재에 도전한다. 손과 , 또는 작품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도록 직접 제작하거나 버려진 도구를 이용해 종이를 공격한다. “밑창에 못을 촘촘히 박은 신발, 스탠리 나이프, 메스 등은 확장된 손과 변형된 발의 역할을 하며 뚫고, 파고, 벗겨내고, 자르고…”, 작가는 이렇게 끝나지 않은 열거를 풀어 놓는다. 도구들이 폭력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은 지나침이 없고 안정적인데, 이는 종이를 뚫는 작가의 목적이 종이의 , 뒷면에 색의 대비를 주어 두께와 뒷면을 밝혀내고 시사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부드러움인가 공격성인가, 꿀일까 피일까,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가 아님 잔인하게 다루고 있는가…? 과정을 거친 결과, 별이 빛나는 여름 하늘, 미지의 대륙의 지도, 그럴 듯한 스테인드글라스 , 해독할 없는 문장들, 배럴 오르간의 프로그래밍 카드 같은 작품을 접하게 된다. 작가의 중심 사상은 () 시각의 예리함글자 그대로의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진관통하는 (piercing glance)”- 이다. Dominique de Beir 1994년에 점자를 배우면서 예술 세계에 입문했다고 쉬이 얘기하지만, 그의 작품을 접하다 보면 안구적출-눈이 관통되는(piercing glance)- 공포와 함께, 한스 벨머의 사진에서 착안된 조르주 바타이유의 소설 < 이야기>처럼 성을 상징하고 있는 눈을 떠올리게 된다.

 

Claude Cattelain 불을 이용한 드로잉을 제작한다. 작가는 <연소 드로잉> 작들이장시간의 과열되고 긴장된 작업 잔재라고 말한다. 그는 대형 종이 위에 혼자 나체로 누워서 성냥불을 사용하여 자기 신체의 윤곽을 지면에 그린다. 정열적인 연필의 역할을 하는 성냥불로 작가의 실루엣을 스텐실 같이 그려나간다. 불은 몸의 윤곽선에 매우 근접해 있어, 금방이라도 몸을 지져 낙인을 찍을 듯하다. 종이가 뚫릴 같은 자국, 다소 날카롭게 흔적, 단순히 그을린 자국 등을 종이에 아로 새긴다. 과정 이후에도 종이의 내부 연소 상태는 최종적으로 안정된 형태가 때까지 며칠 정도 계속 지속된다. 작가는 성냥불이 신체의 가장 작은 윤곽까지 그릴 있도록 계속 움직이게 된다. 움직임은 여러 개의 중첩된 실루엣을 낳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미래파 예술가의 작품 같기도 하다. 어떤 선들의 정렬은 흐리거나 엷어져서 음영진 부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종이와 작가의 육신은 과시행위는 없는 융합의 과정에서 화상의 위험에 똑같이 노출된다. 예술가, 도구, 종이는 모두 희생을 행하는 행위자임과 동시에 희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과정은 사적인 의식의 거행일 뿐이며, 이러한 비공개 의식에서 관객이나 영상 촬영은 없다. 이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의식 등의 개인 공연 비디오 작품과 대중 앞에서의 공연 작품으로 알려진 예술가에겐 참으로 역설적이 아닐 없다.

 

Aristide Bianchi 종이를 박피한다. 먹물, 연필, 물감 등을 사용하여 대형 종이의 양면에 선과 획을 그린다. 그런 다음, 스탠리 나이프로 종이의 앞면과 뒷면을 분리한다. 접지면으로 작용할 넓이감이 있는 부분은 종이의 양면을벌리는작업 중에 상처내지 않은 채로 둔다. 결과, 앞면과 뒷면에 새로운 앞면 (원래 종이의 앞면과 뒷면이 붙어있던 ) 뒷면이 생겨나 종이에 깊이감을 가져온다. 작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접지면벌리는과정으로 인해, 종이의 처음 구조를 가늠하기 힘들다. 어떤 작품들은 마르탱 바레의 시토회의 엄격함을 떠올리게 하고, 마크 로스코의 회화작품이 생각나는 작품들도 있으며, 자유분방한 작품들은 프랭크 스텔라의 패턴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박피된 종이의 질감은 너무 얇아진 나머지, 거의 투명해져서 반투명한 모습을 띤다. 희미한 잔주름들이 위치하여 칼의 움직임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부분도 있는데, 양면의 절개로 인한 종이 무게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종이의인프라신(infrathin)’ 두께를 실현 하였다.

 

Frédéric Messager 종이에 얼룩을 문지르고, 찢고, 뜯고, 구겨서 작업한다. 페이퍼 롤의 대형 종이 위에 펠트펜과 먹물을 사용하여 전대미문의 꿈을 묘사한 작은 추상 풍경을 그린다. 2015 이후에는 플로터를 사용한 디지털 과정을 통해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다. 풍성하고 계산된 동작을 통해 먹물이나 수채물감을 지면에 흘려 퍼뜨린다. 부분적으로는 디자인 문양, 얼룩, 픽셀화된 , 색으로 흠뻑 젖은 등도 있다. 번째 단계는 그리는 과정으로, 기존 방식 또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느리고 인내심을 요하는 힘든 작업이다. 작가의 접근방식은 역동적이며, 일본 미술의 영향도 보인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 작업은 사물의 형태나 어떤 징조, 짐승이 지나간 흔적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행위의 결과에 창작의 주도권을 양보함으로써, 창작의 순간이 명확히 보이는 유토피아적 접근으로 펼쳐나가는 풍경이며, 드로잉 동작의 리듬을 방해하는 위험요소나 결정요소까지 고려하였다.” 번째 단계에서는 드로잉을 접는다. 이는 드로잉을 있도록 만들어 안에 묻혀 있던 것을 꺼내기 위함이다. 끈이나 클립으로 고정된 종이는 무정형의 독립체로 거듭난다. 그런 , 부피감이 생긴 오브제를 손이나 톱으로 구기고 찢어서 공격하여, 안에 숨겨진 것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문란함조차 엿보이는 할퀴어진 틈새로 내부는 모습을 드러낸다. 데미우르고스로 분한 작가는 무에서의 창조를 이루어 , 내장이 드러나도록 마구 찢는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잔인하게 살해하듯,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과격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런 모든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고혹적이며 도자기 작품 같은 느낌마저 주어 관람객의 감각과 중력에 대한 인지를 흐리게 한다.

 

Patrice Pantin 종이에 상처를 내고, 열을 가하며, 얼룩을 입힌다. 무광 처리된 종이를 기본 소재로 사용하며, 위를 투명접착테이프로 붙여 보호막을 만드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커터칼로 보호막을 깊게 절개하지만 종이에는 손상이 없도록 정교하게 골을 만든다. 이런 식으로 골을 파서 팽팽하고 빽빽하게 잔물결이 이는 이랑들을 지면 전체에 그려 낸다. 그런 다음 토치를 사용하여 다소 느린 동작으로, 지면을 화염으로 어루만져주면 이랑들은 조금씩 오므라드는 반응을 보인다. 번째 단계로, 백색이나 흑색, 또는 적갈색 잉크로 이랑들을 채워준다. 색은 골이 파인 이랑에 침투하여 보호막이 없는 부분의 아래까지 퍼져 간다. 이후 잉크는 마르고 응고된다. 마침내 가늘고 줄에서 얇게 일어난 테이프가 벗겨지고 동맥, 정맥, 소정맥의 빼곡한 조직이 지면의 심장부에 나타난다. 상처와 주름, 혹은 이랑들은 회화의 들판에서 꼼꼼히 쟁기질 하던 농부가 창조한 것인가? 시몬 한타이의 최신작에서 보이는 주름처럼, 절개 없이 남겨진 부분들은 빛을 포착하여 반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종의 계시처럼 등장한 작품은 지리를 나타낸 지도 혹은 천체 지도, 지형 기상 관측도의 등고선, 등압선, 혹은 나란히 놓인 거미줄, 피부를 벗겨낸 등을 연상시킨다. 결과물에서 확실히 느껴지는 단순감과 차분함은 작품에 생명을 부여한 과정의 잔인한 복잡성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과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인내가 요구되는 더딘 고통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은 후에야 이처럼 잊지 못할 사색적인 작품이 탄생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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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예술가들은 종이를 과감히 훼손한다는 외에도, 상당 부분의 공통점이 있다. 접근방식이 때론 복잡하지만 항상 정확하고, 의식 절차의 형태를 취하는 엄격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경우 작가와 작품 소재와의 접전(接戰) 펼쳐진다. 과정은 장시간의 인내를 요하며, 특화된 도구를 사용하여 철저히 계산되고 변경이 불가능한 연속적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신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든 예술가와 작품 소재의 정체성을 결합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하지만 복잡했던 정교함의 기술은 완성작 켠으로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말해, 작품의 모습을 감상하고 다의성을 이해하는 데에 작품 창작의 과정을 필요는 없다. 한편 작품에 잠재되어 있거나 혹은 드러나는 폭력성은 작품 창작의 몸짓을 더욱 알차게 하며, 특히 마지막 단계에 있어서는 작가에 의해 항상 제한적이고 절제된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단순한 지면을 넘어 종이의 숨겨진 , 드로잉의 뒷면이나 종이의 두께 등을 보여주고 드러내기 위해 다양하고 대조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엿볼 있다. 이러한 방식들과 더불어, 종이에 구멍을 내고, 상처를 입히고, 찢거나, 태우고, 훼손함으로써 종이의 속성을 구현하는 데에 한층 다가갔다. 이는 그간 지면에만 가졌던 관심을 조명 받지 못했던 종이의 이면, 내면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데에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 우리 사회의 잔악성에 관한 풍자, 미화, 또는 비판 등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가들에게서 어떤 형태의 가벼움, 통제, 개선, 동작의 절제 등을 관찰할 있는데, 이것은 작품이 가져오는 위안, 수동적이지 않은 위로, 훼손이라는 형태에서만 받을 있는 위안을 제시하고 있다. 무자비한 잔혹성과 인내하는 가벼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서로 간의 화해종이는 인간의 피부로 바뀌고, 작가는 곳에 성흔을 찍지만 또한 감내하는 정체성 결합이란 형태 속에서 – Claude Cattelain 에게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다른 작가들은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작가와 작품은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접근방식을 통해, 가죽을 벗기는 , 찢는 , 구멍을 뚫는 자이자, 상처를 입히는 , 불태우는 자이자, 얼룩을 만드는 자임과 동시에 박피되고, 찢어지고, 구멍이 뚫리고, 상처를 입고, 얼룩이 찍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들은 희생자이자 가해자이다. 극도로 예민한 지진계처럼, 여기 다섯 명의 예술가들은 세상에 잠재된 폭력의 징조를 나지막하게 전한다. 작가들은 폭력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표현으로 변모시킨 , 결국 인간이 가진 잔혹성의 반영으로서 작품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섯 명의 작가들이 하나의 독특한 팀을 이루게 관건은드로잉’ –작품제작 전에 이미 존재했던지, (미리) 구상된 단순초안(draft)’이든지- 드로잉의 지지체인 종이는 이들의 손을 거치면서 작품의 완전한 구성요소가 되고 작품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신을 이끄는 힘은 바로 작가들과 독특하고 비범한 개인적인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이들의 행위이다. 해럴드 스지먼을 표절하는 것은 아니지만 , 이들의 드로잉을 만들어 가는 원동력은 여기 다섯 명의 창작인들의 태도인 것이다. 예술가와 태도, 작업하는 과정, ‘초안(draft)’드로잉 작품의 발상과 오브제 간의 중간매개체가 된다. Dominique De Beir 에게 드로잉이란 과정의 순수한 결과물이며, 작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드로잉이외에 작품제작 전에 존재하는 드로잉은 없다. Claude Cattelain 접근방식에서의 드로잉은 처음에는 작가의 신체였으나, 다른 움직임의 구현으로서 규정하기 힘든 여러 개의 증식된 이미지로 거듭난다. Aristide Bianchi 종이의 양면의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장시간의 고된 작업을 통해 종이의 뒷면-입장에 따라 앞면이 수도 있는- 공개하면서도, 여전히 2차원의 영역에 단호하게 남아 있다. Frédéric Messager 기존의 드로잉 방식으로 그리는 듯하다가, 화난 제스처로 자신이 창조한 평면에 3차원을 허한다. Patrice Pantin 길고 더딘 작업을 통해 작가 자신이 회화의 들판을 쟁기질하는 농부로 분하여 색으로 일궈낸 이랑으로부터 드로잉을 창조한다.

 

드로잉’ -기념물과 매개체로의 기능을 온전히 드로잉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 ‘폭력성’, ‘열정’… 이것이 다섯 작가들의 독특함을 완성하는 가지 요소가 된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적 의미의 드로잉과 견고하고 간과할 없는 현재의 주인공이 드로잉, 가지의 드로잉은 우리의 감성과 의식의 깊이에 도전하기 위해 통합, 동화, 변모, 재건하여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가고 있다. 작가들은 종이가 평면의 수동적인 바탕이 아니라 자체로 예술소재가 수도 있고 수많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질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드로잉의 정의를 되짚어 있는 기회를 관람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여기 다섯 명의 작가들은 드로잉이 지면 위에 그려진 선이나 종이를 바탕으로 작품이라는 정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있음을 노련한 방식으로 당당히 시연하고 있다. 이들이 고안하고 구현한 드로잉 작품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드로잉의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다. 작가들은 종이와 드로잉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역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이해하고 나간다. 종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여 품위를 높인 이들은 종이에 두께와 양감을 부여하고, 중복, 복제를 통해 행동과 실험의 전장으로 탈바꿈시켜, 작품의 창작자뿐만 아니라 관람객까지도 미묘하고 다각적인 변화의 현장을 만끽하게 한다.

 

Dr Louis Doucet,

2017 12

 


 

Drawing-Draft

The contemporary drawing has progressively freed itself from the concept of line to encompass a whole range of practices in which both the pencil and the line can sometimes be absent. What defines a drawing, in the minds of many today’s people, is the use of paper as a medium. This is, at least, the lesson that can be learnt from the visits along the aisles and walls of the numerous drawing-shows and exhibitions which, for some years, have blossomed everywhere. A more in-depth study of the long history of the practice of drawing leads us to consider a somehow different definition, emphasizing two more essential characteristics. These are already present in the tale of the original legend of the Corinthian potter’s daughter Butades who used a piece of chalk to draw, on a wall, the silhouette of her bridegroom who was leaving for the war. She then filled in the shape with clay that she fired in an oven in order to perpetuate the effigy of her beloved one. Historically, the drawing is thus an intermediary, in that it is only a transitional step, though decisive, in the process of elaborating a nobler, presentable work, which is neither transient nor short-lived. It contributes to a project. It is a draft. The story could only end sadly, the young soldier died during the war. The drawing became a memorial, in that the grieving girl only kept the terracotta effigy, the product of the drawing design, to remember the features of the disappeared one. The drawing thus contributes to creating a reminder, a relic, in the etymological meaning of this term, of someone who has been and is no longer here. The drawing becomes a by-default substitute to what is no longer accessible. And if the drawing were to disappear[1], its memory more than that of the original object would replace the missing one. Whatever definition is to be retained, the drawing continues to fill, as it has been doing for centuries, these two fundamental functions that characterise it, more and better than the mere use of paper as a substrate: a drawing is both an intermediary and a memorial.

For the five presented artists – Dominique De Beir, Claude Cattelain, Aristide Bianchi, Frédéric Messager and Patrice Pantin –, the memorial function focuses on the drawing itself, on its creation process. It testifies above all of a generative process, resorting to a more or less exteriorized violence that attacks the paper, makes it “suffer”. With these artists, the drawing process is simultaneously aggressive, transgressive, resulting from a true hand-to-hand fight with the paper, turning into a true passion in the original meaning of this word.[2]

However, the destructive actions carried out by our five artists result into transfigured, aura-bearing[3] forms, which raise the paper from the status of a passive surface to that of an artwork. With them, the drawing is thus an intermediary, in an approach that goes from a draft – a project – to a finished product whose final appearance often ignores the traditional definition of a drawing. Their works and approaches do therefore fully comply with the model that we described in our introductory remarks. Intermediation plays a very specific role here, focused on the chain that goes from the paper, a raw material, to the final product: the draft turning into a drawing. These artists therefore contribute, in their own ways, to shaping the recent history of this mode of expression by bringing in very personal attitudes, processes and procedures, while being strongly anchored in the contemporary world. If the paper plays, with them, an important role by being their favourite – but not exclusive – expression material, it is however not an end in itself, but only a medium, an intermediary. Their primary concerns, their starting points are the drawing and the draft, being both the raw material and the product of behaviours that continually oscillate between softness and violence, between reflection and passion, between tenderness and brutality. We must also admit that an ontological debate is at stake, in which the paper, from being a secondary element, a vector of a draft that goes beyond it, bears and supports the drawing, contributes to its materialisation, then becomes active to turn into an artefact, the ultimate translation of the artist’s intents. This process is a materialisation, a kind of incarnation in which the paper, from passive, becomes agent, then spokesperson of the creator. When submitted to the eyes and imaginations of a viewer – an outsider breaking-in observer of the result of a long and slow process to which he or she was not invited –, the work then lives a new life, makes sense, frees itself from its creator, becomes equal or surpasses him or her. For, if Baudelaire wrote: “drawing is a struggle between nature and the artist”, we must not forget the words of Degas: “a drawing is not a form; it is a means for seeing a form.”

We can therefore see, in the proposals of our five artists, a decisive change in the way of apprehending a drawing. With them, the functions that are traditionally vested in the drawing – memorial and intermediary – become self-reflexive. They apply almost exclusively to the drawing itself, to its raw material, to the paper, and to the process of its elaboration. With them, the drawing takes its autonomy, becoming simultaneously subject, object and process of transformation, becomes an end by itself, free from any consideration other than its own obv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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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que de Beir pierces, strikes, claws, peels, reverses the paper, a material that is both resistant and fragile. She prepares it meticulously and then martyrizes it, trying to wake it up, according to her own words, to reveal it, to materialize its thickness and to raise our awareness of the existence of its back which is usually invisible. She tackles with various types of materials, natural or waxed leaves, but also salvages: carbon papers, cardboard boxes... She attacks them, with her hands and/or feet, using tools that she creates – or salvages – for that purpose specifically for each series of works. She provides an incomplete enumeration of these: “wooden soles stuffed with nails, tridents, Stanley knives, scalpels; piercing, digging, peeling, cutting, extending the hand, distorting the foot.” Even if these tools suggest violence, everything remains under control because the objective is, above all, to pierce the sheet in order to reveal or suggest its thickness, its back, from which arises or wells up a different colour, tender or aggressive, honey or blood ... Preciousness or brutality... The result can suggest a starry summer sky, the map of an unsuspected continent, an improbable stained-glass window, an indecipherable scripture, the programming card of a barrel organ... The eye and the sharpness of the vision – the piercing glance, in its proper and figurative meanings – are at the centre of the artist’s thoughts. She readily mentions the beginning of her practice in the learning of Braille, in 1994. In front of her works, one cannot help but think of the enucleation phobia – the piercing glance that has become pierced – and the sexual symbolism of the eye, as Georges Bataille developed it in his Story of the eye, with pictures by Hans Bellmer.

Claude Cattelain produces drawings with fire. His Combustion Drawings are, according to his own words, the relics of “a feverish, long, tense exercise”. Lying alone, naked, on a large sheet of paper, he draws, on the paper, the contour of his body using the flame of long lit matchsticks. The silhouette of the artist acts as a stencil, the fire playing the role of an ardent black lead pencil. The flame, which closely follows the contour of the body, can, at any moment, burn it and leave a stigma. It marks the paper with its imprint: scars, more or less sharp burnt patches, on the verge of piercing the paper, or simple soot traces. The internal combustion of the paper can last a few days after the initial process, until it stabilizes and gives the drawing its final appearance. The artist must move to let the burning matchstick follow the slightest outlines of his anatomy. His movements have the effect of producing several superimposed silhouettes – a bit like in the works of some of the Futurists –, but also blurs or dilutes the rigor of certain lines and creates shaded areas. Both the paper and the body of the artist expose themselves to the same risk of burning, in a fusional process, without exhibitionism. The artist, his tools and the paper are both sacrificer and sacrificed. No spectator, however, for this in-camera ritual and no video record of its course. We are in the field of a private ceremonial. This is paradoxical enough from an artist who is mostly known for his public performances and for his videos of private performances staging small, often trifling secular liturgies.

Aristide Bianchi skins the paper. Using Indian ink, pencil or paint, he draws lines and strokes on both sides of a large sheet of paper. He then cleaves the paper with a Stanley knife in order to separate its sides. He nevertheless leaves an unscathed, more or less wide, strip that will act as a hinge, as an articulation, during the “opening” of the sheet. A front and a back then result into a new front (the juxtaposition of the front and the back of the original sheet) and into a new back, drawn from the depths of the paper. Even if the artist denies it, the choice of the “hinges” and the “opening” process make the identification of the initial structure of the sheet difficult. Some of the resulting works do conjure up the all-Cistercian rigour of Martin Barré, others Mark Rothko’s paintings, others, still more unbridled, Frank Stella’s pattern paintings... The texture of the cleaved paper shows areas where the sheet has become so thin that it is almost transparent, translucent. Elsewhere, some vague ripples suggest the direction of the knife’s motion and show the paper weight unevenness resulting from the cleavage of the sides. Through this process, the artist does materialize the thickness of the infrathin[4] of the sheet.

Frédéric Messager mackles, rips, shreds, and crumples the paper. He uses large sheets from paper rolls, on which he draws, with felt pens and Indian ink, small abstract landscapes, staging unprecedented dreams. Since 2015, he has been feeding his graphic work through a digital process using a plotter. He spreads Indian ink and/or watercolours on the surfaces, directing and controlling the flow through ample and measured gestures. The topping partially covers the motifs, the smudges, the pixelated lines, and the colour-saturated strips... The first phase, the drawing phase, resorting to traditional or digital tools, is slow, patient and laborious. His approach is both gestural and somehow inspired by Japanese art. In his own words, these are landscapes that he “unfolds in a utopian approach where the moment of the creation is made obvious, in a kind of surrender to the production of spoors, forms, signs, while taking into account the hazards or determinations that intervene in the dynamics of the drawing action.” In a second phase, he folds the drawing on itself in order to open it and to bring out what is buried inside it. Maintained by straps and drawing clips, the sheet is formatted as a shapeless entity. He then attacks the resulting volume, wrinkles it, tears it with his hands or with a saw, excavates it in order to show what is hidden. The inside is revealed by breaches, by almost obscene clefts. The artist, turned into a demiurge, simultaneously gives birth to his creature ex nihilo then rips it to reveal its viscera. Tough love of the creator for his own creation. Pygmalion brutally murdering his Galatea... In spite of all this latent violence, the result is often seductive, conjuring up ceramics, in a kind of sense-tricking process that fools the observer and his perception of gravity.

Patrice Pantin lacerates, heats and mackles the paper. His basic material is a matt coated sheet of paper. He starts up the process by covering the sheet with transparent adhesive tape. Armed with a knife or a scalpel, he deeply incises the protective layer and meticulously scarifies the flesh of the paper without piercing it. He thus draws hollow, tight, dense, and rippling furrows that cover the whole surface. Then, with a blowtorch, in a more or less slow gesture, he lets the flame caress the base which then reacts with piecemeal retractions. In a third phase the artist stuffs the grooves with white, black, or sepia ink. The colour penetrates the scarified furrows and partially disseminates under the uncovered areas of the paper. The ink then dries up and coagulates. A network of arteries, veins, and veinlets appears at the heart of the surface, when it is finally stripped of the adhesive that flakes in small strips. Scars, wrinkles or furrows created by a meticulous ploughman of pictorial fields? As with the folds in Simon Hantaï’s last works, the areas that were left without incisions play an essential role in capturing and reflecting the light. The unveiled work – revealed in a kind of epiphany – comes forward as a geographical or celestial map, a topographic or meteorological survey with its contours or isobars, a juxtaposition of threads in a arachnidan tapestry, a skinned flesh... The contrast is staggering between the calm, the apparent simplicity of the resulting works and the brutal complexity of the process that gave birth to them. So much energy channelled, in a slow and patient agony, to create these unforgettable meditation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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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five artists, beyond sharing transgressive practices against the paper, do have a certain number of points in common. First, their approaches are framed by a rigorous process, often complex, always precise, sometimes taking the form of a ritual, which involves, in most cases, a hand-to-hand fight of the artist with his or her material. This process is long, patient, relying on specific tools and an immutable succession of predefined steps. It is often physical and engages, consciously or not, a fusional identification of the artist with his or her material. However the technique of elaboration, as complex as it may be, disappears behind the resulting work: there is no need to understand the process used to create the work to be able to appreciate its formal and plastic qualities. Last but not least, violence, either latent or expressed, nourishes the generative gesture of the work while being always contained and under the control of the artist, at least in the final phases of the process.

One will also notice a shared desire to use various and contrasting techniques, in order to reveal, to show what lies beyond the surface of the paper, its hidden side, the back of the drawing, and also its thickness. With them, piercing, lacerating, tearing, burning or dismembering the paper contributes to materializing its consistency, its usually neglected third dimension, thus moving the focus of interest from the surface of the sheet towards its entrails.

However, one must not see in these works an allegory, a glorification or a condemnation of the cruelty of our society. For most of these artists, one can observe a form of lightness, of measure, of rarefaction, of control of the gesture, which testifies to a certain soothing, a soothing without resignation, a soothing which can rely on a form of transgression. A constantly renewed reconciliation of brutal cruelty and patient lightness ... The paper is changed into a human skin, to receive the stigmata inflicted by the artist but also endured by himself, in a form of fusion-identification – quite directly with Claude Cattelain, more metaphorically with the others –, an incessant back and forth between the artist and his or her work. The flaying artists, the rippers, the perforators, the lacerators, the burners, the maculators... thus finds themselves flayed, ripped, perforated, lacerated, burnt, mackled... by his their approaches. They are both victims and executioners. Like hypersensitive seismographs, our five artists do echo the slightest signs of the latent violence of our world. They channel it, make it their own, then transfigure it to give us works that are, in the end, only reflections of our own inhumanity.

But what matters even more in our subject, what gathers our five artists in a singular and unique family, is that, under their hands, the drawing – either pre-existing or a simple (pre)-conceptualized draft – and its physical support become fully-fledged elements of the work, are turned into a work. The drivers of the transformation are the artist and his behaviour, all imbued with his or her unique and often unusual personal experience. Without plagiarizing Harald Szeeman,[5] among our five creators, it is mainly the attitudes that make the drawing. The artist, his or her posture, the process he or she implements, and the draft-drawing become intermediaries between the idea and the artifact. With Dominique De Beir, drawing is a pure result of the process: it does not pre-exist, except in the mind of the artist. In Claude Cattelain’s approach the drawing is initially the body of the artist, which turns into a multiplied image, the materialization of another moving, plural and elusive body. Aristide Bianchi begins by drawing on both sides of a sheet, then, by a long and patient exercise, he reveals its back – which is also, in its own way, a front – while remaining in the realm of a strict flatness. Frédéric Messager draws in an almost conventional manner, then, with angry gestures, confers a third dimension to his planes. Patrice Pantin creates his drawing from colour-saturated furrows, the result of a long and tedious work that turns him into a kind of ploughman of pictorial fields.

Drawing – in a self-reflexive approach to the functions of memorial and intermediary – violence, and passion... This is the trilogy that makes the uniqueness of our five artists. Both heirs of the centuries-old tradition of drawing and protagonists in a highly concrete and hardly negligible present, they make theirs, integrate, assimilate, transform and restore it in order to challenge us in the depths of our sensibilities and our consciences. They give us a proof that paper can be something else than a flat and passive support, that it can become a material in its own right, that can be declined in the most varied forms.

We can also perhaps seize this opportunity so that we, as spectators, do revisit what a drawing is, in its full and whole acceptation. Our artists do demonstrate, in a masterly fashion, that a drawing can be something else than lines on a sheet, something else than a work that takes paper as its support. Drawing, as they conceive and put it into practice, frees itself from the constraints in which it has long been maintained. They re-read and rewrite, each in his or her own way, their own version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history of the drawing and of the paper. They enlist, engage, ennoble the paper, give it thickness, volume, duplicate it, multiply it, transform it into a battlefield of action and experimentation, that involves, in subtle and diversified transfer games, both the creator and the viewer of the resulting work.

Dr Louis Doucet, December 2017

 


 

Dessin – Dessein

Le dessin contemporain s’est progressivement affranchi de la notion de trait pour englober toute une série de pratiques dans lesquelles le crayon et la ligne peuvent parfois être absents. Ce qui définit, aujourd’hui, le dessin, dans l’esprit de beaucoup de personnes, c’est l’utilisation du papier comme support. C’est, du moins, ce que l’on pourrait retenir de la visite des allées et des cimaises des salons de dessins qui, depuis quelques années, fleurissent un peu partout. Une étude plus approfondie de la longue histoire du dessin nous amène à considérer une définition quelque peu différente, mettant en avant deux caractéristiques plus essentielles, déjà présentes dans le récit de la légende originelle de la fille du potier corinthien Butadès qui traça à la craie, sur un mur, la silhouette de son fiancé partant pour la guerre, puis remplit la forme de terre qu’elle fit cuire pour en pérenniser l’effigie. Historiquement, le dessin est intermédiaire, en ce qu’il ne constitue qu’une étape transitoire, certes décisive, dans le processus d’élaboration d’une œuvre plus noble, présentable, non sujette à l’éphémère. Il contribue à un projet. Il est projet. L’histoire ne pouvant être que triste, le jeune soldat meurt à la guerre. Le dessin devient alors mémorial, en ce que l’amoureuse éplorée n’aura plus que l’effigie en terre cuite, le produit du dessein-dessin, pour se remémorer les traits du disparu. Le dessin a donc contribué à créer ce qui subsiste, la relique, au sens étymologique de ce terme, de quelque chose qui a existé et qui n’est plus. Le dessin devient un substitut, par défaut, à ce qui n’est plus accessible. Et si le dessin venait à disparaître[6], c’est plus sa mémoire que celle de l’objet initial qui suppléerait à l’objet disparu. Quelles que soient les définitions que l’on retiendra, il n’en reste pas moins que le dessin continue à remplir, comme depuis des siècles, ces deux fonctions fondamentales qui le définissent plus et mieux que le simple recours au papier en tant que subjectile. Il est intermédiaire et mémorial.

Pour les cinq artistes présentés – Dominique De Beir, Claude Cattelain, Aristide Bianchi, Frédéric Messager et Patrice Pantin –, la fonction mémoriale se concentre sur le dessin lui-même, sur la démarche de son élaboration. Elle témoigne avant tout d’un processus générateur, recourant à une violence plus ou moins extériorisée qui s’attaque au papier, le fait « souffrir ». Le dessin est, chez eux, à la fois entreprise agressive, transgressive, mise en œuvre en un véritable corps à corps avec le papier et résulte de cette action, une véritable passion au sens originel[7] premier de ce mot.

Cependant, des actions destructrices mises en œuvre par nos cinq artistes naît une forme nouvelle, transfigurée, auréatique[8], qui élève le support de son statut de surface passive à celui d’œuvre d’art. Chez eux, le dessin est aussi intermédiaire, dans une démarche qui va d’une intention – d’un projet – vers un produit fini dont l’apparence finale se joue souvent de la définition traditionnelle du dessin. Leurs travaux et leurs démarches s’inscrivent donc pleinement dans le modèle que nous avons développé dans notre propos liminaire. L’intermédiation y joue un rôle très spécifique, focalisé sur la chaîne qui va du papier, matière première, au produit final, le projet matérialisé en dessin. Ces artistes contribuent, à leur façon, à façonner l’histoire récente de ce mode d’expression en y apportant des attitudes, des processus et des modes opératoires très personnels et cependant fortement ancrés dans le monde contemporain. Si le papier joue, chez eux, un rôle important en étant leur support d’expression prédilectif – mais non exclusif –, il n’est pas fin en soi, mais seulement moyen, intermédiaire, truchement. Leur préoccupation première, leur point de départ, est le dessin – et le dessein –, à la fois matière première et produit de comportements qui oscillent continuellement entre douceur et violence, entre réflexion et passion, entre tendresse et brutalité. C’est aussi, il ne faut pas se voiler la face, l’enjeu d’un débat ontologique, dans lequel le papier, de secondaire, vecteur d’un dessein qui le dépasse, (sup)porte le dessin, contribue à sa matérialisation, puis s’active pour devenir artefact, œuvre, traduction ultime du propos de l’artiste. Il s’agit, ici, d’un processus de matérialisation, d’incarnation, dans lequel le papier, de passif, devient agent, puis porte-parole du créateur. Soumis à l’œil et à l’imagination du spectateur, observateur extérieur invité, comme par effraction, à constater le résultat d’un long et lent processus auquel il n’a pas été convié, l’œuvre vit alors d’une nouvelle vie, prend du sens, s’affranchit de son créateur, en devient l’égal ou le surpasse. Car, si pour Baudelaire, « le dessin est une lutte entre la nature et l’artiste » il ne faut pas oublier le propos de Degas : « le dessin n’est pas la forme, il est la manière de voir la forme. »

Il y a donc, dans les propositions de nos cinq artistes, une évolution décisive dans la façon d’appréhender le dessin. Les fonctions qui lui sont traditionnellement dévolues – mémorial et intermédiaire – deviennent, chez eux, autoréflexives. Elles s’appliquent de façon quasi exclusive au dessin lui-même, à sa matière première, le papier, et au processus de son élaboration. Chez eux, le dessin prend son autonomie, devenant simultanément sujet, objet et processus de transformation, fin en soi, libéré de toute considération autre que sa propre é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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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que de Beir perfore, frappe, griffe, épluche, retourne le papier, matériau simultanément résistant et fragile. Elle le prépare minutieusement, puis le meurtrit, essayant de le réveiller, de le révéler, pour en matérialiser l’épaisseur et faire prendre conscience de l’existence d’un arrière habituellement inaccessible. Elle s’attaque à divers types de support, des feuilles vierges ou paraffinées, mais aussi des matériaux de récupération : papier carbone, boîte en carton… Elle les agresse, des mains ou des pieds, avec des outils qu’elle conçoit – ou récupère – spécifiquement pour chaque série d’œuvres. Elle en donne une énumération qui reste partielle : « semelles de bois traversées de clous, tridents, bistouris, scalpels ; perforer, creuser, éplucher, découper, prolonger de la main, déformer le pied. » Si ces outils suggèrent la violence, tout reste cependant sous contrôle car il s’agit, avant tout, de traverser la feuille pour en révéler ou suggérer l’épaisseur, le revers, d’où surgit ou sourd une couleur autre, tendre ou agressive, du miel ou du sang… Préciosité ou brutalité… Le résultat peut évoquer un ciel d’été étoilé, l’atlas d’un continent insoupçonné, des vitraux improbables, des écritures indéchiffrables, la carte de programmation d’un orgue limonaire… L’œil et l’acuité de la vision – le regard perçant, au sens propre et figuré – sont au centre du propos de l’artiste. Elle évoque volontiers le début de sa pratique dans son apprentissage du braille, en 1994. On ne peut, devant son travail, s’empêcher de penser aux phobies de l’énucléation – le regard perçant devenu percé – et à la symbolique sexuelle de l’œil, telle que Georges Bataille la développa dans son Histoire de l’œil, illustrée par Hans Bellmer.

Claude Cattelain dessine avec le feu. Ses Dessins combustions sont, selon lui, les reliques d’« un exercice fébrile, long, tendu. » Seul, nu, couché sur une grande feuille de papier, il trace, sur le support, le contour de son corps à l’aide de la flamme de longues allumettes. La silhouette de l’artiste devient poncif, le feu simultanément ardente mine de plomb et ponce. La flamme, qui suit le tracé du corps au plus près, peut à chaque instant, le brûler et y laisser des stigmates. Elle marque le papier de son empreinte : cicatrice, brûlure plus ou moins nette, à la limite de la perforation, ou simple trace de suie. Le phénomène de combustion interne du papier peut durer quelques jours après l’exercice, jusqu’à ce qu’il se stabilise et donne au dessin son aspect définitif. L’artiste doit bouger pour que l’allumette enflammée suive les moindres contours de son anatomie. Ses mouvements ont pour effet de produire plusieurs silhouettes superposées – un peu à la façon des œuvres de certains futuristes – mais jouent aussi le rôle d’estompe, diluant la rigueur de certains traits pour créer des zones ombrées. Le papier et le corps de l’artiste s’exposent au même risque de brûlure, dans un processus fusionnel, sans exhibitionnisme, dans lequel l’artiste, ses outils et le papier sont également sacrificateur et sacrifié. Pas de spectateur, cependant, pour ce sacrifice en huis-clos, et pas de trace vidéo de son déroulement. Nous sommes dans le domaine du cérémonial privé, ce qui reste, avouons-le, assez paradoxal pour un artiste surtout connu pour ses performances publiques et pour ses vidéos de performances privées qui constituent des sortes de petites liturgies profanes et, souvent, dérisoires.

Aristide Bianchi dépèce le papier. Il dessine, sur les deux faces d’une grande feuille, des lignes, des traits, à l’encre de Chine, au crayon ou à la peinture, puis la sépare en l’attaquant, au cutter, dans son épaisseur. Il laisse cependant indemne une bande, plus ou moins large, qui servira de charnière, d’articulation, lors de l’« ouverture » de la feuille. D’un recto et d’un verso résultent alors un nouveau recto – la juxtaposition du recto et du verso de la feuille initiale – et un nouveau verso, tiré des entrailles du papier. Même si l’artiste s’en défend, le choix des « charnières » et le processus d’ouverture rendent difficilement identifiable la structure initiale de la feuille. Certains résultats évoquent la rigueur toute cistercienne d’un Martin Barré, d’autres Mark Rothko, d’autres encore, plus débridés, les pattern paintings de Frank Stella… La texture du papier dédoublé laisse percevoir des zones où l’épaisseur est devenue si fine qu’il en devient presque transparent, translucide. Ailleurs, de vagues ondulations laissent deviner le sens du travail du scalpel et les irrégularités du grammage résultant de la séparation des faces. L’artiste matérialise ainsi l’épaisseur de l’inframince[9] de la feuille.

Frédéric Messager macule, déchire, lacère et froisse le papier. Il part de larges feuilles issues de rouleaux de papier sur lesquelles il dessine, au feutre et à l’encre de Chine, des petits paysages abstraits, des mises en scène de rêves inédits. Depuis 2015, il nourrit son travail graphique par un procédé numérique imprimé au traceur. Sur ces surfaces, il répand des nappes d’encre de Chine et/ou d’aquarelle, dirigeant et contrôlant l’écoulement par des gestes amples et mesurés. Ces nappages recouvrent partiellement les motifs, ratures, traits colorés et pixélisés, bandes de couleurs saturées… Le premier temps, celui du dessin à la pointe d’un outil traditionnel ou numérique est lent, patient et laborieux. Sa démarche est à la fois gestuelle et quelque peu japonisante. Ce sont, pour lui, des paysages qu’il « développe dans une approche utopique où s’affiche l’instant de la création, sous une forme d’abandon à la production de traces, formes, signes, en tenant compte des hasards ou des déterminations qui interviennent dans la dynamique de l’exécution du dessin. » Dans un second temps, il replie le dessin sur lui-même pour l’ouvrir et faire surgir ce qui est enseveli. Maintenu par des sangles et des pinces de dessin, la feuille se met en forme en des volumes informes. Puis il attaque le support, le froisse, le déchire à la main ou à coups de scie, lacère les formes ainsi obtenues, va rechercher, par excavation, ce qui est caché. L’intérieur se révèle par des brèches, par des béances presque obscènes. Devenu démiurge, l’artiste, dans un même mouvement, crée de toutes pièces sa créature puis l’éventre pour en révéler les viscères. Amour vache, amour destructeur, du créateur pour son propre ouvrage. Pygmalion assassinant sauvagement sa Galatée… Malgré toute cette violence latente, le résultat est souvent séduisant, évoquant la céramique, dans une sorte de trompe-les-sens qui se joue du spectateur et de sa perception de la pesanteur.

Patrice Pantin lacère, chauffe et macule le papier. Son matériel de base est un papier couché mat. Il commence par couvrir la feuille de ruban adhésif transparent sur toute sa surface. Armé d’un cutter ou d’un scalpel, il incise profondément et minutieusement la couche protectrice, scarifiant la chair du papier sans la percer. Il dessine ainsi en creux, des sillons ondoyants, drus, serrés, sur toute la plage picturale. Ensuite, muni d’un chalumeau, dans un geste plus ou moins lent, il caresse de la flamme le support qui réagit alors par rétractation parcellaire. Dans une troisième phase il gorge l’ensemble d’encre blanche, noire, sépia. La couleur pénètre les sillons scarifiés et diffuse partiellement sous les zones découvertes du papier. L’encre sèche et coagule. Un réseau d’artères de veines et de veinules apparaît au cœur de la surface finalement dépouillée de l’adhésif qui se desquame en fins lambeaux. Cicatrices, rides ou sillons créés par un consciencieux laboureur de champs picturaux ? À l’instar des pliures dans les dernières œuvres de Simon Hantaï, les zones en réserve des scarifications jouent un rôle essentiel pour faire surgir, capter et réfléchir la lumière. L’œuvre dévoilée – révélée dans une sorte d’épiphanie – se manifeste comme une carte géographique ou céleste, un relevé topographique ou météorologique avec ses isohypses ou isobares, une juxtaposition de fils dans une arachnéenne tapisserie, une chair écorchée… Le contraste est stupéfiant entre le calme, la simplicité apparente des œuvres résultantes et la brutale complexité du processus qui leur a donné naissance. Tant d’énergie canalisée, dans un lent et patient supplice, pour créer ces inoubliables plages de mé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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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 cinq artistes, au-delà du partage d’une pratique transgressive à l’encontre du papier, se retrouvent autour d’un certain nombre de points communs. Tout d’abord, leur démarche est encadrée par un processus rigoureux, souvent complexe, toujours précis, prenant parfois la forme d’un rituel, qui implique, le plus souvent, un corps à corps de l’artiste avec son œuvre. Ce processus est long, patient, s’appuyant sur un outillage spécifique et une succession immuable d’étapes prédéfinies. Il est souvent corporel et engage, de façon consciente ou non, une identification fusionnelle de l’artiste avec son support. Mais la technique d’élaboration, aussi complexe soit-elle, disparaît derrière l’œuvre réalisée : il n’est aucun besoin de comprendre la méthode de réalisation pour en apprécier les qualités formelles et plastiques. Enfin, une violence, latente ou exprimée, nourrit le geste générateur de l’œuvre mais reste toujours contenue et sous le contrôle de l’artiste, du moins dans la phase terminale du processus.

On relèvera aussi, chez eux, une volonté partagée, bien que recourant à des techniques diverses et contrastées, de révéler, de manifester, l’autre côté de la feuille, la face cachée du papier, l’arrière du dessin, mais aussi son épaisseur. Chez eux, trouer, lacérer, déchirer, brûler ou dépecer le support permet d’en matérialiser la consistance, sa troisième dimension, habituellement négligée, déplaçant ainsi le propos de la surface de la feuille vers ses entrailles.

Il ne faut surtout pas voir dans ces travaux une allégorie, une glorification ou une condamnation de la cruauté de notre société. Il y a, en effet, chez la plupart de ces artistes, une forme de légèreté, de mesure, de raréfaction, de contrôle du geste, qui témoignent d’un certain apaisement, d’un apaisement sans résignation, d’un apaisement qui peut s’appuyer sur une forme de transgression. Réconciliation, sans cesse renouvelée, de la cruauté brutale et de la patiente légèreté… Le papier se mue en peau humaine, support de stigmates infligés par l’artiste mais aussi subis par lui-même, dans une forme de fusion-identification – au premier degré chez Claude Cattelain, plus métaphorique chez les autres –, de va-et-vient incessant, entre l’artiste et son œuvre. L’artiste écorcheur, dépeceur, perforateur, lacérateur, brûleur, maculateur… se retrouve ainsi lui-même écorché, dépecé, perforé, lacéré, brûlé, maculé… par sa propre démarche. Simultanément victime et bourreau. Sismographes hypersensibles, nos cinq artistes se font écho des moindres signes de la violence latente de notre monde. Ils la canalisent, la font leur, puis la transfigurent pour nous livrer des œuvres qui ne sont, in fine, que des reflets de notre propre inhumanité.

Mais ce qui importe encore plus, dans notre propos, et qui réunit ces cinq artistes en une famille singulière et unique, c’est que, sous leurs mains, le dessin – préexistant ou simple dessein (pré)conceptualisé – et son support – bien matériel, lui – deviennent des éléments à part entière de l’œuvre, se font œuvre. Les moteurs de la transformation, ce sont l’artiste et son comportement, tout empreint de son expérience personnelle, unique et souvent insolite. Sans vouloir plagier Harald Szeeman[10], chez nos cinq créateurs, ce sont surtout les attitudes qui font le dessin. L’artiste, sa posture, le processus qu’il met en œuvre et le dessein-dessin deviennent les intermédiaires entre l’idée et l’artefact. Chez Dominique De Beir, le dessin est pur résultat du processus, il ne préexiste pas, si ce n’est dans l’esprit de la créatrice. Dans la démarche de Claude Cattelain le dessin est initialement le corps de l’artiste, qui devient image démultipliée, matérialisation d’un autre corps, mouvant, pluriel et insaisissable. Aristide Bianchi commence par dessiner sur les deux faces d’une feuille, puis, par un long et patient exercice, en révèle l’envers – qui est aussi, à sa façon, un endroit –, tout en restant dans une stricte planéité. Frédéric Messager dessine de façon presque conventionnelle, puis, dans des gestes rageurs, confère une troisième dimension à ses tracés plans. Patrice Pantin fait surgir le dessin de sillons gorgés de couleurs, résultat d’un long et fastidieux labeur qui l’apparente à un laboureur de champs picturaux.

Dessin – dans une approche autoréflexive des fonctions de mémorial et d’intermédiaire–, violence, passion… C’est cette trilogie qui fait l’originalité de ces cinq artistes, simultanément héritière de la tradition pluriséculaire du dessin et agis­sant dans un présent, bien concret et difficilement négligeable, qu’ils s’approprient, font leur, intègrent, assimilent, transforment et restituent de façon à nous interpeller au plus profond de nos sensibilités et de nos consciences. Ils nous apportent la preuve que le papier peut être autre chose qu’un support plan et passif, qu’il peut devenir un matériau à part entière se déclinant sous les formes les plus variées.

Peut-être faut-il aussi saisir cette occasion, pour que nous, spectateurs, revisitions ce qu’est un dessin, dans son acception pleine et entière. Nos artistes nous démontrent de façon magistrale que ce peut être autre chose que des traits sur une feuille, autre chose qu’une œuvre qui prend le papier pour support. Le dessin, tel qu’ils le conçoivent et le mettent en pratique, s’affranchit des contraintes dans lesquelles il a été longtemps maintenu. Ils relisent et réécrivent, chacun à sa façon, leur propre version de l’histoire passée, présente et future du dessin et du papier. Ils enrôlent, engagent, anoblissent le papier, lui donnent de l’épaisseur, du volume, le dédoublent, le démultiplient, le muent en un champ d’actions et d’expéri­men­tations, impliquant, dans des jeux de transfert subtils et diversifiés, tout à la fois le créateur et le spectateur de l’œuvre résultante.

Louis Doucet, décembre 2017

 

 



[1] Most often involuntarily but sometimes voluntarily, for example, by iconoclasm, or when Robert Rauschenberg erased a Willem de Kooning’s drawing.

[2] Both the act of suffering and the result of it.

[3] See Walter Benjamin in The work of art in the time of its mechanical reproducibility.

[4] A Duchampian notion.

[5] In his famous and then highly controversial exhibition When attitudes become form: live in your head, at the Bern’s Kunsthalle in 1969.

[6] Involontairement, le plus souvent, mais cela peut aussi être volontaire, par iconoclasme, par exemple, ou comme Robert Rauschenberg effaçant un dessin de Willem De Kooning.

[7] Simultanément l’action de souffrir et le résultat de cette action.

[8] Voir Walter Benjamin in L’Œuvre d’art à l’époque de sa reproductibilité technique.

[9] Notion duchampienne.

[10] Dans sa célèbre et, alors, très controversée exposition When attitudes become form: live in your head, organisée à la Kunsthalle de Berne en 1969.